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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2022.10.24 - 11. 02 / Art Space128 in Daejeon)

옥상 천정에서 지름 약 5cm 가량의 ‘구멍’을 발견한다.

컴컴한 어둠뿐인 옥상 천정의 구멍사이로 내리는 빛이 인상 깊다. 옥상 바닥과 벽의 경계쯤에 놓여, 먼지 더미 속에 묻혀있는 물체를 본다.

구멍 사이로 드는 가는 빛으로 인해 사방의 먼지들이 선명하다. 가까이 다가가는 사이 뭔가가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한다.  "스슥 .. 스슥” 어두워서 분명하지 않다. 가는 빛이 더욱 산란하게 만든다.

 

전시 ‘구멍’은 여름을 지나는 시간 속에서 찾은 인상이다.

내가 사는 곳은 산비탈을 등에 업고 상수리나무가 지붕처럼 큰 그늘을 만드는 곳이다. 산자락에 놓인 집이라서 사계절 바람이 잦고 일찌감치 겨울 냄새가 찾아온다.

무엇보다도 여름은 장마가 쏟아 부은 빗물을 머금은 토양과 식물이 뿜어내는 습기와 후끈한 열기로 인해 온 종일 텁텁한 숨을 내쉬게 한다. 여름을 더욱 짙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들리는 벌레소리다.

나뭇잎 사이사이마다 비집고 새 나오는 벌레소리는 숲의 공기를 빽빽하게 채우며 진동한다. 한 낯의 어느 시간, 선명하게 맞닥뜨리는 그 소리는 때로는 두려운 아우성으로 다가온다.

여름의 시간을 관통하는 풀벌레의 목소리는 삶의 간절함이며 죽음을 기다리는 절망이다.

화려한 색색의 식물 역시 여름이 베푸는 호의 중 하나다. 뜨거운 햇빛을 받은 꽃들은 가장 선명하고 화려한 색상으로 자신을 과시한다.
‘장미, 나팔꽃, 루드베키아(rudbeckia), 수국, 원추리꽃...’

그다지 오래 머물지 못하는 존재. 눈부시게 뿜어내던 색과 자태는 불과 며칠 후에는 초췌한 몰골을 드러낸다. 마치 끔찍한 몰골을 가리기위해 꾸민 화려한 베일이 벗겨진 것처럼 시듦은 눈부셨던 만큼 애처롭다.

화려한 자태 속에 추한 몰골을 감춰 두었던 것인지 본래 보잘 것 없는 모양 안에 눈부신 화려함이 잠시 머문 것인지 알 수 없다. 이 두 모양이 한 몸이려나. 삶과 죽음. 아름다움의 이면(裏面). 사물의 본래 모습.

여름이 품은 시간은 화려하고 강렬한 시간이자 처절한 생존의 서사.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이 어지러이 한자리에 뒤엉키는 시간이다.

 

착시다. 먼지와 얇은 빛이 만든. 거기에는 그냥 비닐과 삭은 천이 엉켜있었다.

뿌연 먼지 속에 희미하게 움직이던 모습. 내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뭔가 살아 있는 것의 ‘호흡’같았다. 혹시 ‘새끼 고양이’거나 ‘쥐’ 일수도 있겠지.

짧고 얕은 숨이지만 분명 살아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생명체는 없었다.

 

구멍으로부터 ‘숨’을 생각한다. 작은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은 밝음과 어둠의 경계를 예리하게 가르고 사물의 꼴을 드러내며 눈에 보이지 않던 미미한 생명체까지 생생히 살린다.

캄캄한 어둠속에도, 온갖 사물 속에도, 하잘 것 없는 것에도, 혐오스러움 속에도 ‘숨’은 비추며 스민다.

 

‘구멍’은 빛이 통과하는 자리이고 밝음과 어둠을 연결하는 매개이자, 숨이 들고 나는 길이다.

 

Hole

From the rooftop ceiling, a hole of about 5 cm in diameter has been discovered. The light filtering through the hole in the dim rooftop ceiling is very noticeable.

I look at the object near the boundary of the floor and the wall of the rooftop, buried in piles of dust.

Thanks to the thin light filtering through the hole, the dust particles around are clearly seen. Approaching closer, I caught a glimpse of something moving.

"Swoosh... Swoosh," it's not clear in the darkness. The thin light distracts even more.

 

It was an illusion. Created by dust and thin light. Just tangled plastic and worn cloth were there.

 

A faint movement in the hazy dust. What did I see? It seemed like a 'breath’ of something alive. It might be a 'kitten' or a 'mouse.'

Though it was a short and shallow breath, I definitely felt something alive. But there were no living creatures.

 

From the hole, I think about ‘breath’. The light trickling through the small nook sharply divides the boundary between light and darkness, revealing the form of objects and vividly

bringing to life even the tiniest living things that you couldn’t see with your bare eyes.

Even in the pitch-black darkness, in all sorts of things, even in the insignificant, hatefulness, 'breath' shines and soaks in.

 

The 'hole' is where the light passes through, a medium connecting light and darkness, and the path where breath comes and g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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