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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모양 (2023.10.03 - 10. 22 / Gallery Soorich in Gongju)

두 개의 창이 보인다.

아담한 공간에 숨구멍처럼 열려있는 두 개의 구멍이 무더운 한 여름의 후텁한 공기와 함께 미지근한 바람을 연신 실어 나른다. 유난히 더운 올 여름의 끈적한 향기까지 덤으로 얹어서 말이다.

 

처음 전시 제안을 듣고는 사실 설렘보다는 걱정이 훅, 앞섰다. 이미 봄에 개인전을 치룬 이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수리치’라는 공간이 주는 ‘네츄럴’(natural-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닌, 꾸미지 않고 자연스러운 / 여러 단어를 생각해봤지만 네츄럴이란 단어만큼 수리치 공간이 적절히 묘사되지 않는다 )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옛집 구조를 그대로 살려 구성한 공간은 전시를 목적으로 하는 장소이기에 앞서 일종의 문화 공간, 마을 공동체의 커뮤니티, 혹은 아카이빙 공간으로 꾸며져 전시공간으로 활용해 온 터라 흙벽은 물론 구옥 내부 구조가 그대로 노출되어있어 분명 다가가기 쉽지 않은 장소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기존의 전시장 공간이 전시장 내부와 외부의 세계를 분리하는 특수성을 담보했다면 여기는 오히려 내, 외부가 지나치게 연결되어 있어 그 장소의 특성을 이해하는 나름의 설계를 필요로 했다.

그렇게 주저하는 즈음에 마주한 것이 두 개의 ‘창’이다. 마치 수리치 별관처럼 놓인 작은 공간에서 두 개의 창을 만나고, 거기에서 작년에 선보였던 전시 “구멍”을 떠올리고 그것과는 또 다른 결을 발견한다.

 

2022년의 여름의 ‘구멍’은 여름 한 철을 지나면서 내가 사는 곳에서 받은 여러 인상들을 모았었다.

여름의 장마가 뿜어내는 습기와 후끈한 열기, 그리고 여름 한 시기를 처절하게 관통하는 화려한 식물과 풀벌레들에 대한 일종의 애도이며 함께 보낸 그들의 애절한 삶에 관한 내 나름의 헌사와 같은 것이었다.

2023년 여름 수리치에서 또 다른 ‘구멍’을 만난다. 시간의 결을 타고 숨이 들고 나는 ‘창’을 만난다.

 

전시는 모두 영상작업으로 구성된다.

2011년 이래로 지금까지 진행해오고 있는 ‘유사한 시선’과 ‘작은 방’, ‘구멍’ 모두 빛이 드는 일정한 시간에 맞춰 바닥에 빛이 드는 모양을 닮은 유리가루를 설치하고, 빛이 들어와 유리가루와 마주치고 사라지는 하루의 과정을 ‘인터벌촬영’으로 담은 작업이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의 풍경 속 어딘가에서 사건처럼 펼쳐지는 짧은 순간의 황홀경과 그 이면의 현상을 담았다. 예컨대 실재와 환영, 순간과 영원, 삶과 죽음, 아름다움의 이면 등이 그것이다.

이들 작품에는 모두 ‘시간’이 숨 쉬고 있다.

 

‘시간’은 오랜 시간동안 나의 작업에 관여해왔다.

오래된 작업 -펜 뜨개질의 시간, 나뭇잎의 시간 -에서부터 현재의 작업 -유사한 시선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시간은 수수께끼다.

순간, 지금, 영속, 찰나, 시, 분, 초, 현재, 과거, 미래, 영원...

시간이란 ‘지금’과 ‘여기’를 가리키는 수단처럼 다가온다.

매 순간이 ‘지금’으로 이루어진, 모양을 특정할 수 없는 독특한 감각이자 차원 같은 것이란 생각이다. 어떤 것도 이전과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는, 마찬가지로 어떤 것도 이후의 것과 같을 수 없는 모양.

특정한 상황 속의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는 것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어떤 신비로운 비밀에 다가가는 기분이다.

내가 영상이란 매체와 인터벌 촬영을 선호하는 것 역시 시간이란 재료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시간이라는 모양을 구체적으로 느끼는 것은 매력적인 사건이 된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마치 시간을 ‘그리는 것’ 같은 생생함이 전달된다.

 

창으로 들어와 이내 사라지는 시간은 유일무이한 ‘순간’에 관한 것이다.

 

참, 공교롭다. 2023년의 또 다른 여름이다.

2023년, 수리치의 시간 속에서 여름을 담고, 지나가는 모양을 담고, 유일한 하루를 담는다.

또다시 그렇게 유일한 하루를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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